아무 생각도 없이 아무것도 하지않고 그저 틀어박혀 지낸 한달이었습니다.
그렇다고 몸과 맘이 마냥 편하지도 않았지만...
돌아볼수록 늘 빈털터리로 변함없이 제 자리만 끝없이 맴도는
자신이 실망스러워서 더욱더 스스로를 허물고 나무라며 뭉그적이다보니
어느덧 2월의 끝, 방안 깊숙이 들어오던 햇살이 부쩍 짧아지고 바람결에도 봄기운이 서렸더군요.
늘어질 대로 늘어져 무기력해진 몸과 맘을 주섬주섬 추슬러 화분에 물도 주고 청소를 하다가
말린 취나물이 보이기에 집앞 슈퍼에 들러 밤과 대추를 샀습니다.
한달내내 아무 말 없이 꼼짝않는 못난 딸내미때문에 이래저래 괴로우셨을 어머니께 별미로 영양밥을 해드리고 싶었거든요.
물론 영양밥 한 그릇보다는 빨리 새 일자리 찾아 먹고 살 걱정 덜어드리는 게 더 마땅한 일이건만ㅠㅠ
냄비에 불린 쌀과 취나물을 안치고 감자도 한 알, 몸값 비싼 밤과 대추도 일곱 알씩 얹었습니다.
이만큼 해도 서넛은 둘러앉아 먹을 수 있겠더군요.
집 가까운 지인들이 있다면 부르거나 한 그릇 퍼담아 갈 수도 있을텐데...
늦은 밤, 강남대 옆에 살 때 자주 드나들던 반찬집 쥔장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공들여 하던 반찬집을 심술궂은 건물주때문에 갑자기 그만두게 되어 시름겨워했던 그분이
소개로 일 시작한 곳에서 벌써 한달이 되어간다며 첫 월급 받는 날 밥 같이 먹자고 하시네요.
순간, 울컥했습니다.
내가 뭐라고...내가 뭘 했다고...
<크리스마스 파티 칠면조를 부탁해!>
(나탈리 다르정 글, 마갈리 르 위슈 그림, 박정연 옮김, 맹&앵, 2009)
늑대와 여우, 족제비가 크리스마스 파티를 열기로 했어요.
빈틈없는 여우는 미리부터 제일 예쁜 칠면조를 눈여겨보아두었더랬죠...
그런데...
잡혀온 칠면조는
크리스마스 파티를 하려면 정성을 들여야 한다면서 난장판인 집안 청소를 시키고
먹을 것을 찾아 오라고 오히려 큰소리 쳤어요.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지면서
늑대와 여우, 족제비 세 친구는 여전히 식탁에 앉기 전에 손 닦는 것을 싫어하지만
칠면조가 만들어 주는 맛있는 음식에 담뿍 길들여졌고
장식용 구슬을 달거나 사람 모양의 과자 굽는 법도 잘 알게 되었답니다.
또한 추워하는 칠면조를 위해 벽난로에 불도 지폈어요.
드디어 크리스마스 전날, 칠면조가 물었어요.
"난 포도주에 익혀지고 싶은데, 이 요리법은 참 어려울 거야. 너희들 잘 해낼 수 있겠니?"
세 친구들은 당황해서 기침을 해댔어요.
새로 사귄 친구의 뱃속을 양배추로 채우거나 포도주에 담근 채 굽고 싶지 않았으니까요.
친구를 잃고 싶지 않았으니까요.
(보세요, 벽난로 위 사진 속에 누가누가 있는지ㅋ)
어떻게 하면 좋죠?
잠깐만...
이 칠면조 아가씨, 표정이 어째 예사롭지 않네요. ㅎㅎㅎ
되는 일 하나도 없고
기억해주는 이 하나도 없는 것 같아 공연히 서럽고 외롭기만 했는데...
같이 밥 먹자는 그 말 한 마디가, 그 말 한 마디를 건넨 이의 마음이 한숨에 건너와 먹먹했어요.
그저 잘못 살지만은 않았구나
혼자가 아니었구나
그래요.
고마웠습니다.
내가 뭐라고, 내가 뭘 했다고
힘들여 번 첫 월급을 떼어 밥을 먹자는지...
그래서...
크리스마스 전날이 될 때마다 칠면조가 더 살찌도록 또 다음 크리스마스로 미루며
오래도록 행복하게 살아가는 네 명의 친구들처럼
저도 어설픈 솜씨로 지은 영양밥이나마 누군가와 함께 나눠 먹고 싶어지는 날이었습니다.
이제 봄입니다.
우리 같이, 맛있는 밥 먹을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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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수가 먹고 싶다
- 이상국
국수가 먹고 싶다
사는 일은
밥처럼 물리지 않는 것이라지만
때로는 허름한 식당에서
어머니 같은 여자가 끓여 주는
국수가 먹고 싶다
삶의 모서리에 마음을 다치고
길거리에 나서면
고향 장거리 길로
소 팔고 돌아오듯
뒷모습이 허전한 사람들과
국수가 먹고 싶다
세상은 큰 잔칫집 같아도
어느 곳에선가
늘 울고 싶은 사람들이 있어
마을의 문들은 닫히고
어둠이 허기 같은 저녁
눈물 자국 때문에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사람들과
따뜻한 국수가 먹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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