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친 이야기

희망의 이유

keepthesunshine 2010. 11. 8. 03:17

 

 

 

<희망의 이유: reason for hope>

제인 구달 / 박순영 옮김/ 궁리 / 2003

 

 

한 푼의 돈도 귀했기 때문에, 아이스크림 사먹기나 기차 여행, 영화 관람 같은 작은 여유 모두가 소중했고 추억할 만한 큰 기쁨이 되었다.

모든 사람들이 이런 어린 시절과 가족을 가질 수 있도록 축복받는다면 이 세상은 얼마나 다른 곳이 되겠는가!

 

무엇보다도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갖도록 가르쳐주셨다.

 

어머니는 규율이 중요하다고 확신하셨고, 왜 어떤 것은 허용되지 않는지를 늘 설명해주셨다. 무엇보다도 어머니는 공정하고 한결같고자 노력하셨다.

 

만약 뭔가를 하려면 최선을 다해라.

 

'하느님은 스스로 돕는 자들을 돕는다. '라고 배워왔다. 우리는 책임을 져야만 한다.

이런저런 식으로 파괴해온 지구를 치유하고 정화하는 데 모두 자신의 역할을 해야 한다.

 

문화적 종분화가 극단적으로 되면, 외부 집단의 구성원들을 비인간화하고, 나아가서 그들을 거의 다른 종의 구성원으로 간주하게 할 수도 있다.

이것은 집단 내에서 작동하는 금지와 사회적 제재로부터 구성원들을 자유롭게 하고, 집단 내에서 허용되지 않는 행동을 '타자들'에 대해서는 할 수 있도록 한다.

저울의 한편에는 노예제와 고문이 있고, 다른 한편에는 비웃음과 사회적 매장이 있다.

 

문화적 종분화는 분명히 세계 평화의 장벽이다.

 

연민이나 자기 희생은 많은 인간 사회에서 중요시되는 가치이다.

다른 사람, 특히 가까운 친구나 친척이 힘겨워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마음이 상하게 된다.

무언가를 하고, 또 돕는(또는 도우려고 애쓰는) 것을 통해서만 자신의 불편한 마음을 달랠 수 있다.

또한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도와야 할 필요성을 느끼기도 한다.

지진으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나 피난민들, 지구 전역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 알게 될 때마다,

우리는 돈이나 의복, 의료 장비를 보낸다.

 

죽음은 우리의 곁에 끝없는 삶의 순환으로서 언제나 존재한다.

 

단순한 삶에 몰두하면서 혼자임을 느끼게 되는 순간은 얼마나 행복한지.

 

중요한 것, 진정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였다.

신이 만들어놓은 이 땅에서 서로 싸우고 상처를 주면서 신의 창조물들을 계속 파괴해갈 것인가?

아니면 다른 사람들과 자연 세계와 더욱더 조화를 이루며 살아갈 방법을 찾게 될 것인가?

중요한 것은 그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스스로 질문했다.

우리에게 미래에 대한 희망이 있는 것인가?

우리의 이기적인 탐욕 - 우리의 권력과 토지와 부에 대한 욕망 - 은 평화를 바라는 마음보다 훨씬 우세한 것처럼 보였다.

 

지금 숲과 산림과 초원과 평원과 습지 같은 모든 야생의 거주지들이 놀라운 속도로 사라지고 있다.

또한 수백만 년에 걸쳐 서서히 진화해온 각기 독특한 동물과 식물 종들도 사라져가고 있다.

심지어 마지막 남은 자연의 보루인 북극과 남극에서도 인간의 해악과 잔해의 흔적이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파괴의 대부분은 자신들의 불합리하고 물질적이며 호화로운 삶의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개발도상국의 가난한 사람들의 입에서 음식을 훔쳐가는 풍요한 세계의 탐욕스럽고 낭비적인 사회들 때문이다.

 

나는 사랑받는 것들은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가 내면의 평화를 얻고자 한다면, 내면에 있는 이러한 영혼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모든 인간들, 모든 독특한 존재들은 진보를 이루어나가는 데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우리 모두는 변화의 씨앗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 씨앗들이 자신의 잠재력을 실현시킬 수 있도록 잘 가꾸어야 한다.

 

내가 혐오하는 것이 고기 먹는 것 자체가 아니라 집중적인 공장식 사육이라는 사실이다.

고기를 먹는 사람들은, 살아있는 동안 행복했으며 도살 과정에서 가능한 한 적은 고통을 경험한 동물들의 고기를 먹을 수 있어야 한다.

 

인간이 품성을 지닌 유일한 동물이 아니라는 것, 합리적 사고와 문제 해결을 할 줄 아는 유일한 동물이 아니라는 것,

기쁨과 슬픔과 절망을 경험할 수 있는 유일한 동물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도 육체적으로뿐만 아니라 심리적으로도 고통을 아는 유일한 동물이 이니라는 것을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덜 오만해질 수 있다(그러기를 기대한다).

또한 인간에게 유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해서 다른 형태의 생명들을 무한정 이용할 천부의 권리가 있다고 굳게 믿는 실수를 피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우리는 독특하지만, 우리가 지금까지 생각해온 것처럼 동물 세계의 다른 동물들과 그렇게 많이 다르지는 않다.

이러한 깨달음을 통해 지구에 함께 살고 있는 다른 동물들을 새로운 존중의 눈으로 바라보는 겸손함을 얻을 수 있을 것이며,

특히 개, 고양이, 돼지와 같이 복잡한 뇌 구조를 가진 동물들, 그리고 새회적 행위에 대하여 많이 알고 있는 동물들을 새롭게 볼 수 있을 것이다.

 

세계는 '일순간의 폭발이 아니라 한동안 흐느끼는 사이에' 종말을 맞을 것이다.

지구라는 우주선의 생명체들이 그러한 운명을 맞이하는 것을 상상하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미래, 우리의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있다.

물론 우리가 삶의 방식을 바꿀 때에만, 그것도 하루 빨리 바꿀 때에만 희망은 존재한다.

시간이 많지 않다. 그러한 변화들은 바로 당신과 내가 가져오는 것이다.

변화를 일으킬 책임을 남에게만 미룬다면 좌초는 피할 수 없다.

 

내가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이유는 네 가지이다.

인간의 두뇌, 자연의 회복력, 전세계 젊은이들에게서 찾아볼 수 잇는, 또 타오르게 할 수 잇는 에너지와 열정,

그리고 마지막으로 불굴의 인간 정신이 그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우리는 책임에서 벗어나기를 좋아하고 남들에게 손가락질하기만을 좋아한다. 우리는 이렇게 말하곤 한다.

"오염, 쓰레기 문제와 같은 것들이 우리의 잘못은 아니다. 그것은 기업, 산업, 과학계에서 잘못한 것이다. 정치가들에게 잘못이 있다."

이러한 태도는 파괴적이고 치명적인 무관심으로 연결되고 있다.

자신이 바로 소비자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무엇을 살 것인지, 무엇을 사지 않을 것인지를 자유롭게 선택함으로써 우리는 기업과 산업의 윤리를 바꿀 수 있는 집단적인 힘을 쥐고 있다.

선이 실현되도록 힘을 행사할 수 있는 대단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수요가 줄어들면 동물들이 좀더 인도적인 조건에서 사육될 수 있을 것이다.

 

많은 문제들이 발생한다는 이유로, 이러한 비윤리적이고 잔인한, 파괴적인 행위들이 영원히 계속되는 것을 묵과할 수는 없다.

수용소 근무자들의 일자리 때문에 수용소가 계속 유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는가?

 

"생명에 대한 경외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단순히 기도만을 하지 않는다.

그는 생명을 지키기 위한 전투에 자신을 투신할 것이다.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도 주변 생명들의 연장선상에 있는 똑같은 생명이기 때문이다."(슈바이처)

 

우리는 각자가 중요하고, 작자 해야 할 역할이 있으며, 각자가 무엇인가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들 각자는 자신의 삶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며, 무엇보다도 주위의 살아 있는 존재들에게, 특히 우리 서로에게 존경과 사랑을 표현해야 한다.

우리는 함께 자연 세계, 그리고 우리 주위에 있는 영적인 힘과 다시 연결해야 한다.

 

모든 것들 하나라도 당연하게 주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건 위험하다.

나는 항상 이렇게 배웠다.

"하느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사소한 것까지 신경을 쓰고 챙기는 꼼꼼함, 구리고 각각의 환자에게 쏟는 관심이 그가 성공적인 의사일 수 있었던 비결이라고 확신한다.

 

"너무 많은 일을 해야 하고, 잘 먹지도 못하고, 잔인한 취급을 받는 동물들을 위해,

쇠창살에 날개를 부딪히는 모든 잡혀 있는 피조물들을 위해,

뒤쫓음을 당하거나 버려진, 잊혀진,

두려워하거나 배고파하는 모든 이들을 위해, 죽임을 당해야 하는 모든 이들을 위해, .......

그리고 그들을 대해야 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는 연민과 부드러운 손길,

친절한 말들을 할 수 잇는 마음을 주시도록 기도드립니다."(슈바이처)

 

사람들이 정말로 위험한 상황에 부딪혔을 때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내가 어렸을 때 중요하다고 강조되던 근본적인 가치들, 즉 정직함, 자기 통제, 용기, 생명 존중, 공손함, 연민, 관용과 같은 것들을

오늘날 많은 어린이들에 가르치지 않는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서구의 풍요로운 사회에서 수많은 어린이들이 텔레비전에서 방영되는 폭력을 즐기고 온종일 '가상'현실에서 살면서,  '진정한' 현실과는 점점 멀어지고 있다.

부모들은 일을 하는 경우가 많아서, 책임감 있고 타인을 배려하는 어른으로 자랄 수 있도록 역할 모델을 제공할 사람이 없다.

대신에 상당수가 약물 중독인 팝 스타와 배우들을 우상화하고 있다.

그들도 결국 폭력적이고 배려할 줄 모르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우리 각자 모두가 주위의 세계를 바꾸려는 시도를 하는 것만으로도 할 수 있는 일이 많이 있다.

정말 사소한 일들부터 시작할 수 있다.

슬프고 외로운 사람들에게 미소를 짓게 하거나, 불행한 개가 꼬리를 흔들게 하거나,

고양이가 만족스러운 그르렁 소리를 내게 할 수도 있고,

시들어가는 식물에게 물을 줄 수도 있다.

우리가 세계의 모든 문제들을 해결할 수는 없겠지만, 눈앞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에 대해서는 보통 무엇인가 할 수 있을 때가 많다.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굶주리는 아이들과 사람들을 모두 도울 수는 없겟지만,

주위의 길거리에서 방황하는 아이들, 노숙자들, 동네에 사는 노인들의 경우는 다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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