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석 요한 신부님 글, 사진 / 생활성서사 / 2010
'예수님, 감사합니다! 전쟁의 상처와 아픔이 있는 곳, 처절한 가난이 있는 곳, 세상 어느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는 소외받는 이곳,
이 누추한 곳까지 찾아오셨네요! 감사합니다.'
교회가 가난한 이웃의 모습으로 숨어 계시는 예수님을 외면한 채, 그분이 누우실 구유에만 관심을 갖는다면 예수님께서는 얼마나 마음이 아프실까.
음악을 통해 아이들 마음에 기쁨과 희망의 씨앗을 심을 수 있을 것 같아 악기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주님의 거대한 사랑의 물결이 '음악'이라는 내 삶의 작은 틈을 통해 흘러 들어와 이젠 내 삶 전체에 스며들어 있다는 것을,
내 삶이 독립된 나 혼자의 삶이 아니라 이곳 사람들의 삶의 일부이기도 하며 이곳 사람들의 삶도 내 삶의 일부라는 것을,
그리고 시공을 초월한 각기 다른 삶들의 조화로운 섞임이 십자가 위에서 바라보고 계시는 예수님의 마지막 유언이었다는 것을
아프리카의 한 작은 마을에서 '천사의 양식'이라는 성가를 들으며 깨달을 거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가.
이제 하느님께서는 이곳 아이들의 삶을 한 올 한 올 짜실것이다.
각기 다른 형태와 색깔로 짜깁기를 하시겠지만, 나의 삶이 이곳 아이들의 삶의 짜깁기에서 작지만 꼭 필요한 귀퉁이 한 부분으로 남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아무이게도 도움을 줄 수 없고 오직 다른 이들의 도움으로만 살아가는 그들이지만,
그들과 지내면서 그들은 특별한 능력을 지닌 사람들이라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중 하나는 조그마한 것에도 감사를 느끼고 그것을 표현할 줄 아는 능력이다.
자그마한 것에 기뻐하고 감사할 줄 아는, 그 감사를 기어코 무언가로 표현하고 싶어 하는 아름다운 영혼 말이다.
나로 하여금 소중한 많은 것들을 뒤로 한 채 이곳 수단까지 오게 한 것도,
열악한 환경이지만 후회 없이 기쁘게 살 수 있는 것도,
모두가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 그들 주위로 모이게 하고
주님의 존재를 체험하게 만드는 보잘것없는 나환자들의 신비스러운 힘 때문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그들에게 머리 숙여 감사하게 된다.
'없는 것이 없는' 한국과는 반대로 이곳은 말 그대로 '있는 것이 없는'곳이다.
가진 것은 적지만 그것을 서로 나누고자 하는 마음, 자그마한 것을 만족하고 감사하는 마음,
무엇보다도 산상 설교에 나오는 텅 비워진 '가난한 마음'이 이들이 누리는 행복의 비결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가진 많은 것들 때문에 우리의 삶이 행복한 것처럼 착각하지만 실제로 그것은 삶에 발린 많은 양념과 조미료에서 나오는 거짓 '맛'이지
실제 삶 자체에서 나오는 맛, '행복의 맛'은 분명히 아니라고 생각된다.
부족한 것들 때문에 이곳에서의 생활이 불편한 점도 있긴 하지만 부족한 것들 덕분에 얻는 평범한 깨달음도 많다.
무엇보다도 작은 것들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덤으로 얻게 되어 기쁘다.
많이 가지지 않으므로 인해 오는 불편함은 참고 견딜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는 모양이다.
그것을 통해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에 대한 참된 가치를 알게 되고 감사하는 마음까지 생기게 되며,
그것을 통해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지극한 사랑을 저절로 느끼게 되니 말이다.
기도는 들어줄 때까지 끈질기게 해야 한다는 예수님의 가르침때문인지 아이들은,
제발 고등학교를 열어 달라고 끈질기게 수년 간을 졸라 댔다.
요즈음은 '예수님이라면 이곳에 학교를 먼저 지으셨을까, 성당을 먼저 지우셨을까?'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
아무리 봐도 학교를 먼저 지으셨을 것 같다.
사랑을 가르치는 성당과도 같은 거룩한 학교,
'내 집'처럼 느껴지게 하는 정이 넘치는 학교, 그런 학교를 말이다.
'향의 종류와 세기의 정도에 차이가 있긴 하겠지만 사람은 누구나 나름대로의 향기를 지니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주위의 다른 사람들에게 어느 정도의 영행을 끼치는 자기장과 비슷한 그런 향기 말이다.
내 삶의 향기를 어떤 향기일까?
얼마나 강한 자기장을 지닌 향기일까?
내 스스로가 맡을 수도 없고 그 세기도 알 수 없지만
그 향기에 대해 내 스스로가 책임을 져야 하지 않나 생각하게 된다.
우리의 삶에 향기를 만들어야 한다.
후각만 자극하는 향기가 아닌 사람들의 존재에
그리고 그들 삶의 원소적 배열에 새로움 변화를 일으키게 하는 자석 같은 향기 말이다.
전쟁은 무조건 없어져야 한다.
전쟁으로 희생되는 많은 아이들의 삶이 파괴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도덕적 관념의 파괴를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전쟁은 무조건 반대해야 한다.
아니 목숨 걸고 반대해야 한다.
전쟁을 막을 수만 있다면 지구 끝까지 가서라도 밀어붙이며 반대해야 한다.
어떠한 이유에서건 전쟁은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된다.
건물이나 중요한 유산들이 파괴되는 것도 문제이지만
그것보다도 전쟁이 마뉴알과 같은 죄 없는 아이들에게 입힌 도덕적, 심리적 상처야말로 돌이킬 수 없는 심각한 파괴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마뉴알을 만난 이후로 전쟁 종식을 위해 하루도 빠짐없이 기도하게 된 이유도 거기에 있다.
최소의 투자로 최대의 이익을 올리는 것만이 모든 사람들의 목표인 자본주의가 만든 '정당화된 버린 무관심'이 진짜 원인
'사랑'의 반대말은 '미움'이 아니라 바로 '무관심'
이 세상에는 눈에 보이는 물질이 아닌 눈에 보이지 않는 순수한 것들에 더 큰 가치를 부여하고
그것을 목숨처럼 소중히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이러한 드러나지 않는 '홀로 투쟁들'은 이 세상을 좀 더 가치 있는 세상으로 변화하게 하는 강한 힘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