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친 이야기

일일일락

keepthesunshine 2011. 3. 16. 00:46

 

 

 

 

<일일일락:하루에 한 가지 즐거움>

황인숙 글 / 선현경 그림 / 마음산책 / 2007

 

김선주 님이 쓴 책에서 이 책을 유쾌하게 읽었다기에 궁금했는데

정말 깔깔대며 읽었다.

이웃나라 일본에선 어떤 아픔들이 벌어지고 있는데

난 이렇게 웃어도 되나 싶어 마음 한 켠으론 움찔움찔...

그들을 기억하며 저녁기도를 했다.

(그냥..뱀발 하나: 그림을 그린 선현경 님이 <이모의 결혼식>을 그린 작가라는 거,

그이의 남편이 만화가 이우일 님이라는 걸

그 이우일 님이 만든 <고양이 카프카의 고백>을 지난해 봐놓고서도 이제야 알았다는...

어지간히도 둔감하다는..새삼스런...이젠 그리 놀랍지도 않다는...휴~~)

 

 

존댓말의 싸늘함

 

누가 내게 존댓말을 쓰든 반말을 쓰든 나는 개의치 않았다.

그래도 내 쪽에서는 아주 나이가 어린 상대에게도 말을 놓지 못했는데,

언젠가부터 조금 친해졌다 싶으면 술술 반말이 나온다.

그러더니 이상한 쪽으로 내가 경어체계에 민감해진 것 같다.

초등학교 2학년생인 조카가 있다.

평소 친하게 반말을 하던 이 애가 어느 날 만나서는 느닷없이 말을 높일 때가 있다.

번번이 당황한다.

어른에게는 존댓말을 쓰는 법이라고 선생님한테 잘 배웠나 보다,

대견하기도 하지만 그보다 먼저 서먹한 기분으로,

얘가 나한테 뭐 뜨악한 게 있나 돌이켜보곤 한다.

대개 오랜만에 만날 때 그러는데, 좀 있다 보면 조카애는 어느새 다시 반말로 돌아온다.

조카애의 존댓말은 서먹함이 자연스레 드러난 것이지만, 친구의 존댓말은 그렇지 않다.

반말을 나누던 사람이 갑자기 존댓말을 해올 땐,

나를 오해했든, 이해했지만 그걸 용서 못하겠든 필경 무슨 곡절이 있는게다.

곡절이 있어도 떳떳하게 평소대로 말할 것이지, 짐짓 거리를 두고 거드름을 떠는 존댓말이라니!

서움함과 불쾌감으로 싸늘해지는 가슴을 부여안고 쏘아붙이고 싶다.

"어따 대구 존댓말이야?!"

 

 

3 Times a Day

 

내 손목에 파란색 고무밴드가 걸려 있다.

전자파를 없애주고 건강에 좋다는 음이온 팔찌다.

한 대형마트에서 샀다.

물건을 7만원어치 이상 사면 5천원 할인해주는 쿠폰이 있었는데,

식료품들로 7만우너을 채우지 못해 그걸 사게 됐다.

계산대 앞에 네 가지 다른 색깔의 팔찌들이 비치돼 있었다.

수익금이 불우이웃 돕기에 쓰인다는데,

파란 팔찌에는 '3 Times a Day'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결식아동을 생각하는 팔찌다.

'3 Times a Day'라니. 볼수록 슬픈 영어다.

아이에게 하루 세 끼를 먹일 능력이 없는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많다고 한다.

결식노인도 많을 것이다.

지금은 어른이 된 조카가 꼬마였을 때 일이다.

같이 호숫가 벤치에 앉아 있는데 조카애가 두어 입 베어 먹은 빵을 휴지통에 던졌다.

못된 짓 한다고 내가 꽥 소리를 지르자 그 애는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잠시 후 휴지통에 다가가 그 옆에 떨어진 빵을 주워서 얌전히 휴지통에 넣었다.

빗맞혀 풀밭을 어지른 걸 나무란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 애에게 '3 Times a Day'에 대해 얘기해줬으면 좋았을 걸, 기가 막혀 웃기만 했다.

다른 팔찌들에는 무슨 슬픈 영어들이 새겨져 있을까?

 

 

세상의 모든 비탈

 

"당신이 대한민국에서 살고, 가진 게 없고 배운 게 없고 나이가 들었고, 또 여자라면, 먹고 살기 위해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그는 취한 머리를 쥐어짜 더듬더듬 들려줬다.

KBS에서 방영됐던 다큐멘터리 <세상의 모든 라면박스>는 대략 그러한 내레이션으로 시작되고 맺어진다고 했다.

"실은 나도 다 못 봤어요. 처음 10분, 끝부분 10분만 봤어요."

"왜요?"

"너무 슬퍼서요. 도저히 못 보겠더라구요."

자기가 본 최고 다큐멘터리라면서, 인터넷 '다시보기'로  꼭 보라고 했다.

<세상의 모든 라면박스>는 달동네에 살면서 폐지를 수집하는 할머니들 이야기란다.

우리 동네에도, 내려갈 때면 쏠린 발이 슬리퍼 앞 트인 데로 삐져 나갈 정도의 급경사 비탈을 오르내리며

폐지를 모아 살아가는 할머니들이 있다.

당신 몸피만한 폐지를 끌고 어제도 오늘도 비탈을 오르시는 할머니들.

전철 선반 위의 신문을 걷어 모으는 할머니들은 또 왜 그리 키가 작으신지.

그 들린 발꿈치와 앙버티는 장딴지의 바르르 떨리는 비탈들.

그건 정말 특수한 경우일 뿐이야, 라는 자기 정당화로 눈을 감아도 소용없다.

특수하든 그렇지 않든, 극빈은 관념이 아니라 삶이므로.

 

 

가을!

 

동생네 가족과 차를 타고 서부역 뒤편을 지나던 중 앞자리에 앉았던 올케가 외쳤다.

"저 사람 은행 털었다!"

"어디? 어디?"

다급히 물으며 창밖을 훑어보니 시커먼 자루를 짊어진 남자가 눈에 띈다.

"저 사람 은행 턴 거 어떻게 알았어?"

신통한 한편 긴가민가해 묻자 올케는 의기양양 대답했다.

"나도 은행 털어봤어요."

엥? 난 또, 은행(銀行)털이를 본 줄 알았에.

내 터무니없는 오해를 짐작도 못한 올케가 달뜬 목소리로 얘기하는

은행(銀杏)털이의 즐거움을 은행잎 굴러가는 소리처럼 흘려들으며,

가을빛이 완연한 거리를 내다봤다.

구르몽, 나는 좋다, 낙엽 밟는 발자국 소리가!

색색 단풍 가랑잎이 폭신히 깔린 길을 걷고 싶구나.

그 전에, 단푼 든 이파리들을 가득 매단 나무들을 보고 싶구나.

늦었을까? 어느덧 가을이 깊어간다.

남산 꽃길에 가봐야지.

케이블카 하우스 건너편에서 국립극장으로 이어지는 그 3km 꽃길은 봄날의 벚꽃도 절색이지만

가을날 선홍색으로 공중을 물들이는 단풍나무들이 설레도록 아름답다.

그곳엔 봄이 좀 늦게 오고 가을은 좀 빨리 온다.

낙엽들이 바람에 쏠려 길 위에서 외치기 전에 서둘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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