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친 이야기

한국학 그림과 만나다

keepthesunshine 2011. 3. 19. 17:57

 

 

<한국학 그림과 만나다>

젊은 인문학자 27인의 종횡무진 문화읽기

정민, 김동준 외 / 태학사 / 2011

 

 

이인상, <야매도>

종이에 담채, 30.4X21.8cm, 국립중앙박물관

 

"희미한 달빛 주렴에 쏟아지니 금가루 차갑게 빛나고

맑은 바람 벽에 부는데 푸른 가지는 길게 뻗었네"

 

>>> 한겨울 매화를 탐하다...(신익철)

 

먹물이 마치 수채물감 같다.

 

 

정선, <종해청조>

비단에 채색, 29.2X23cm, 간송미술관

 

>>> 한강의 절경 두호斗湖를 찾아서...(이종묵)

 

이렇듯 고즈넉한 곳에서 마냥 거닐고만 싶다.

 

 

-옛 풍속화에서 찾아본 술병과 술잔들-

 

 

시계 방향으로

신윤복, <주사거배> 부분..

《혜원전신첩》, 종이에 채색, 간송미술관

신윤복, <사시장춘> 부분.. 종이에 담채, 국립중앙박물관

<책가기명도> 부분.. 비단에 채색, 경기대학교박물관

김홍도, <벼타작> 부분.. [단원풍속도첩], 종이에 담채, 국립중앙박물관

 

>>> 정조 임금이 하사한 귤 술잔 ...(김동준)

 

같은 그림을 보더라도 저마다 보는 것이 다르다.

누군 그림에서 술병과 술잔을, 누구는 악기와 음악 소리를,

어떤 사람은 옷의 변천을, 다른 이는 집과 구조를....

그렇게 찾아서 해주는 이야기가 또한 별나고도 재미있다.

 

 

정약용, <매조도>

비단에 수묵담채, 19X45cm, 고려대학교박물관

 

 

<매조도> 부분

 

이 그림은 시집간 딸을 위해 그려 보낸 것으로,

아래 위 두 겹으로 매화 가지가 가로 걸렸다.

아래쪽 가지에 멧새 두 마리가 엇갈려 앉았다.

이 그림은 구도와 묘사가 빼어날 뿐 아니라 그 안에 담긴 부정이 뭉클한 감동을 준다.

안마당에 찾아든 새 두 마리는 사위와 딸이다.

멀리 떨어져 있던 딸을 가까이 데려와 짝지어준 기쁨을

 "머물러 지내면서 / 집안을 즐겁게 하렴"으로 표현했다.

꽃이 많이 피어 열매도 주렁주렁 달리겠다고 하여 딸에게 자식을 많이 낳으라고 축원했다.

새 두 마리는 몸을 포개고 앉아 시선을 한 방향으로 향했다.

부부란 이렇듯 서로 기대 한곳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존재가 아닌가.

 

 

정약용, <매조도>

1813년, 비단에 수묵담채, 26.7X51cm, 개인소장

 

"묵은 가지 다 썩어 그루터기 되려더니

푸른 가지 뻗더니만 꽃을 활짝 피웠구나.

어데선가 날아든 채색 깃의 작은 새

한 마리만 남아서 하늘가를 떠돌리."

 

다산이 초당 유배 생활 중에 얻은 소실에게서 홍임이란 딸을 두었다고 한다.

딸을 시집보내고 그림과 시를 그려 준 뒤, 잇달아 소실에게서 딸을 얻었다.

당시 다산은 해배의 명령이 이미 내려진 상태라 집행 통보만 기다리고 있었다.

얼마 안 있어 내가 이곳을 떠나게 되면, 저 어린 것이 여기 혼자 남아 하늘가를 맴돌며 울겠지.

그 생각을 하니 마음이 짠해져 갓 태어난 딸을 위해 또 같은 크기의 그림 한 폭을 더 그렸던 것이다.

 

 

다산은 알려진 것과 달리 두 점의 매조도를 남겼다.

두 작품은 거의 같은 시기 똑같은 크기에 비슷한 구도로 그려졌다.

1813년 7월 14일 다산은 큰딸의 혼인을 맞아

아내 홍씨가 3년 전에 보내온 치마를 잘라 딸을 위해 매조도를 그려 주었다.

그리고 8월에 소실에게서 딸을 얻게 되자, 감회를 못 이겨 이 그림을 다시 그렸던 것으로 보인다.

모녀의 자취는 남은 것이 없다.

한 폭의 그림과 한 수의 시에서 빚어낸 생각이 끝이 없다.

 

>>> 다산의 부정이 담긴 매조도梅鳥圖  두 폭 ...(정민)

 

 

서구방, <수월관음도>

1323년, 비단에 채색, 101.5X165.5cm, 일본 개인 소장

 

수월관음도의 전반적 특징이 되는 투명함은

곧 동양회화의 조형적 특징 중의 하나인 담淡, 즉 맑음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동양회화에서는 투명성에 특별한 가치를 부여해왔다.

전통미술의 철학적 배경의 하나가 되었던 불교에서 투명성은 지혜,

즉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보는 마음의 바탕 상태를 뜻한다.

 

<화엄경>에 보이는 인다라망 또한 불교에서 지향하는 투명성의 대표적 근거가 된다.

<화엄경>의 설명은 이렇다.

인다랑이라는 그물이 있다.

제석천궁에 걸쳐있는 이 보석 그물은 하나하나의 연결 매듭마다 옥구슬이 달려 있어,

이것들이 서로 비치고, 비친 옥이 또 비쳐서 무한하게 서로를 반영하는 관계를 의미한다.

이렇듯 많은 사물은 중중무진重重無盡으로 교섭하며 서로를 비춘다.

불교에서 제시한 자아의 깨끗함과 투명성은 단지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서로 비추어 그 빛을 발하는 관계망 속의 투명성이다.

개인의 투명성이 맑게 유지되어야만 서로를 투명하게 비출 수가 있는 것이다.

 

 

일본 단잔진자 <수월관음도> 부분

고려 후기, 비단에 채색

 

 

중국 서하의 수월관음도

13세기, 면에 채색, 48.8X68cm, 상트페테르부르크, 에르미타주박물관

고려불화와는 다른 불투명한 녹색의 사라를 걸쳤다.

 

 

송나라 수월관음도

흰 부분이 많이 누락되었으니 불투명한 흰색 사라를 볼 수 있다.

 

 

<수월관음도>

고려 후기, 비단에 채색, 52.5X100.3cm, 우학문화재단

 

 

<수월관음도>

고려 후기, 비단에 채색, 54.8X106.2cm, 아모레퍼시픽미술관

 

관음보살은 중생을 재난과 질병에서 구해주는 보살로서 관자재/ 관세음/광세음/ 관세음자재보살로 불린다.

자비로운 관음보살은 중생의 다양한 상황에 맞추어

천수관음, 십일면관음, 백의관음, 여의륜관음 등 서른 세 가지의 다른 모습으로 응신應身한다.

수월관음水月觀音도 그 중 하나로서,

달이 비친 바닷가 금강보좌에 앉은 모습으로 나타난다.

수월관음도는 선재동자의 방문을 받은 관음보살의 설법 장면을 형상화한 것이다.

 

>>> 고려시대 수월관음도의 투명성 ...(김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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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한 장의 옛 사진이 어떤 기록물 보다 충실한 역사 자료가 된다.

당시의 인물과 풍물은 물론 역사의 현장까지도 우리 눈낲에 가감없이 전해주기 때문이다.

사진 한 장면에 많은 정보가 함축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사진 자체만으로 다양한 이야기들을 모두 읽어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진 속에 담긴 실살을 알 수 있는 열쇠는 문자로 된 기록에 있다.

예컨대 훗날의 기억을 위해 사진에 쓴 날짜와 이름, 장소조차 매우 중요한 단서가 된다.

조선시대에 사진의 기능을 했던 기록화에 글과 함께 참석자들의 명단을 빠짐 없이 남긴 것도 이런 이유에서이다.

사진이 줄거리가 있는 이야기의 한 단면을 보여줄 때 보다 입체적이고 생생한 시각 자료로서의 기능을 하게 된다.

따라서 엣 사진이 한 줄의 글이나 크고 작은 기록과 만난다면,

그것을 보는 사람에게 사진 속의 현장에 서서 실상을 체험하게 하는 기회를 준다.

이것이 역사적 관점에서 옛 사진과 같은 시각 자료를 다루는 가장 큰 묘미일 것이다.

 

 

<구한말의 가족사진> 

최석로,『민족의 사진첩 Ⅲ: 민족의 전통』(서문당, 1995) 74쪽

 

 

<박씨부인 수연일>

최인진, 『한국신문사진사』

 

<구한말의 가족사진> 의 원본

이를 통해 이 사진은 당시 서울의 상업가 주인섭(1839년생)이라는 사람의 가족사진이자,

주인 박씨의 60회 생일을 기념하여 촬영한 것임을 알게 된다.

사진 속의 가장으로 추측한 인물이 바로 주인섭이다.

'주 인 섭', 이제 이름 석 자만 갖고도 이야기를 풀어나갈 수 있는 큰 실마리가 잡힌 셈이다.

그렇다면, 주인섭은 누구인가?

 

필자는 먼저 사람들의 뒤편에 쳐진 병풍에 주목하여 분석하는 데에 관심을 둔다.

 

 

<곽분양행락도병> 19세기, 여덟 폭, 비단에 채색, 414.8X130.5cm, 나라, 야마토카칸

 

 

왼쪽: 야마토카칸 소장 <곽분양행락도병>의 제7폭

오른쪽: <구한말의 가족사진> 속 왼쪽 병풍의 제8폭

 

 

<십장생도병> 1880년, 열 폭 병풍, 비단에 채색, 201.9X521.0cm, 유진, 오리건대학교박물관

 

 

상: 오리건대학교박물관 소장 <십장생도병>의 부분

중: <구한말의 가족사진> 속 오른쪽 병풍 부분

하: 오리건대학교박물관소장 <십장생도병> 일부에 <구한말의 가족사진> 속 인물 합성후 흑백 전환

 

 

『흠흠신서』와 『청국무술정변기』 신문 광고

『황성신문』1901년 6월 28일 제2면(왼쪽)과 7월 22일 제3면(오른쪽)

 

>>> 구한말 서울의 한 상업가 이야기 ... (윤진영)

 

한 장의 옛 사진을 들여다보다가 관심을 놓치지 않고

오랜 사진 자료를 뒤적여 이름 석 자를 찾아내고 그 이름의 족보를 찾는다.

1839년생인 주인섭은 불혹을 넘기 나이에 무과에 합격하여(1881년, 고종 18)

8년만에 동지중추부사 겸 오위장에 임명된다.

오위장과 동지중추부사는 오늘날의 군단장급이라고 한다.

이렇게 이력을 알고 나니 사진 속의 주인섭의 관복 차림이 이해가 된 필자는

다시 고위직 무관인 그가 왜 상업가로 기록되었는가를 추적해간다.

 

사진 속의 병풍 두 가지를 분석해 나가는 과정

역사적 자료에서 찾아나가는 과정

그리하여 그 자료들이 어떻게 주인섭과 관련을 맺고 있는지 펼쳐지는 과정이 추리 소설 못지않게 흥미진진하다.

역사적 사실이나 자료를 가지고 씌여지는 소설들이 모티브를 얻게 되는 장면인 것이다.

 

 

김홍도, <무동>

《단원풍속도첩》, 종이에 담채, 22.7X27cm, 국립중앙박물관

 

 

전 김홍도, <삼일유가>

《평생도》, 비단에 채색, 35.2X53.9cm, 국립중앙박물관

 

 

김홍도, <단원도>

1784년, 종이에 담채, 78.5X135.3cm, 개인 소장

 

>>> 조선시대 제도권 음악의 얼굴들 ... (송지원)

 

위의 그림들을 보며 무엇을 보셨나요..

혹시 송지원 님처럼 <삼일유가> 그림에서는 대금, 해금, 피리, 북, 장구가 연주되고 있구나.

<무동>에서는 군영 소속의 음악인이 삼현육각을 연주하고 있네 하며 알아채시나요?

삼현육각이란 피리 둘을 비롯해, 대금, 해금, 장구, 북의 여섯 악기로 주로 무용의 반주음악을 연주하는 편성이라네요.

<무동>에서 해금과 피리 연주자가 동다리에 소매가 없는 전복을 덧입고 전립을 쓴 군복차림이라 군영 소속 음악인이라는군요.

이렇게 인물들의 옷차림이나 악기가 무엇무엇이 연주되고 있는지 자세히 살핀 적도 없고

연주되고 있을 음악이나 악기 소리를 상상해본 적도 없었다.

참 뭐하고 다닌건지. 그림 보러 다녔네 맣했지만 안팎으로 모두 허세였을 뿐...말짱 허당이로구나.

 

 

김홍도, <단원도> 부분

 

김홍도는 실제로 상당한 수준의 연주 실력을 지녔던 것으로 전한다.

<단원도>에서 보듯 그는 거문고를 연주했지만, 퉁소 연주도 매우 뛰어났다고 한다.

 

 

이경윤, <월하탄금도>

비단에 수묵, 24.9X31.2cm, 고려대학교박물관

 

>>> 선비의 풍류 정신과 그 변모 ...(임미선)

 

 

<역과 왜학 복시 건륭 정묘식년시 현경제의 시권>

1747년, 종이에 먹, 109.5X74.5cm, 국사편찬위원회

 

(중략) 이상 조선시대의 외무고시라 할 수 있는 역과의 일면을 천녕 현씨가의 고문서를 통하여 살펴보았다.

이 글의 주인공인 현계근은 다섯 살 어린 나이에 왜학 생도방에 들어가 일찍이 외국어를 접했고,

역과 시험을 통해 역관이 되었다.

왜학의 일본어과 교수(훈도)로서 활약하였고,

『인어대방 隣語大方』이라고 하는 일본어 교재를 편찬하기도 한 사람이다.

남아 있는 고문서를 통해 한 사람의 역관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흥미로운 일이며, 우리나라 기록 문화의 가치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한다.

 

>>> 고문서를 통해 본 조선시대 외무고시 ...(정승혜)

 

 

<반차도> 중 정조 좌마 부분

『원행을묘정리위궤』에는 <주교도>를 비롯해

국왕 행렬의 전체 모습을 63면에 담은 <반차도> 등 총 15개의 도설이 들어 있다.

 

 

>>> 정조의 화성 행차와 배다리 ...(김문식)

샤를 쿠베르탱, <출발>

1868년, 캔버스에 유채, 파리외방전교회

 

<출발>은 파리외방전교회 신부들이 선교지로 나갈 때의 송별식 장면을 그린 것이다.

강단에 서 있는 네 명의 선교사 가운데 ...

 

왼쪽 두 번째 선교사의 볼에 입 맞추는 사람은 <아베 마리아>로 유명한 작곡가 구노

(구노는 당시 파리외방전교회의 오르가니스트였다.)

송별식에서는 그가 작곡한 <선교사의 출발을 위한 노래 Song for the Missionnaries` Departure>가 불렸다.

 

터번을 쓴 사람과 악수하고 있는 선교사가 브르트니에르 신부이다.

그는 1866년 병인년 천주교 박해 때 조선에서 순교했고 1984년 천주교 성인으로 시성되었다.

 

맨 오른쪽의 노인은 티베트의 제1대 주교였던 데마쥐르이다.

데마쥐르 주교는 송별식 두 달 전인 1864년 5월 21일 브르트니에르 신부를 비롯하여

조선으로 떠나는 모두 네 명의 신부에게 사제품을 주었다.

 

이 그림을 그린 쿠베르탱은 프랑스의 우명한 귀족 화가이다.

그는 자신의 아이 둘을 화면에 넣었다.

그림 중앙 맨 앞에 있는 남자 아이와 여자 아이다.

그 중에 뒤를 돌아보는 남자 아이가 나중에 근대 올림픽을 든 쿠베르탱이다.

 

 

>>> 파리외방전교회 성당에 걸린 그림 ...(정병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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