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친 이야기

시인의 서랍

keepthesunshine 2012. 10. 11. 13:23

'물끄러미'에 대하여

 

모내기를 마친 논두렁에 왜가리 두 마리가 서 있다.

 

논바닥의 초록 말줄임표에 듬성듬성 이가 빠져 있다. 왜가리들이 미꾸라지나 개구리를 잡으려고 성큼성큼 뛰어가다가 어린 벼 포기를 밟은 것이다. 진흙 수렁에 빠진 벼 이파리가 연초록의 가녀린 힘을 모으느라, 봄 논의 물살은 파르라니 떨리고 있다.

 

무논의 진흙 수렁에 처박힌 벼 이파리가 눈을 비비며 내다볼 물 밖 하늘은 얼마나 아득할까? 논두렁의 쇠뜨기며 키 큰 미루나무가 고개를 빼고 물 빝을 두리번거린다. 논둑의 왜가리도 지가 밟고 온 무논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세상에 깊은 것 가운데 써레질 마친 논만 한 것이 있으랴. 모판을 떠나온 어린 모의 실뿌리라는 것이 옥수수수염만도 못한 길이지만, 그 뿌리가 가 닿아야 할 깊이는 광활하고 엄중한 밥의 나라인 것이다. 자신의 식도를 물음표처럼 서려 접고, 물끄러미 물속 하늘을 들여다보는 왜가리의 골똘함은 또한 얼마나 경건한 풍경인가.

 

문득 서정주의 시 <국화 옆에서>가 떠오른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부르르 잔주름을 흔들고 있는 무논의 물살을, 왜가리가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초록 이파리가 점점 박힌 거대한 거울 앞에 서면 미루나무도, 구름도, 왜가리의 작은 머리도, 국화 꽃숭어리가 된다. 돌아온 자가 된다. 누님이 된다.

 

삶이란 것이 제 발끝에 어린 순 부러지는 줄 모르고 뛰어다니는 못된 속성을 갖고 있는 것을, 포만의 충족감 다음에서라야 깨우치는 나여. 아직 거울을 들여다보지 못하는 왜가리의 발가락 같은 나여.

 

물끄러미, 마음 속 하늘을 들여다본다.

 

누구에게나 눈물 몇 모금의 웅덩이는 있는 것이어서, 언제고 세상의 미꾸라지와 개구리는 내 안에서만 흙탕물을 일으킨다. 가슴속 하늘에는 황사 구름이 사철 부옇게 서려서, 도대체 이놈의 마음에 언제 모내기를 하고 추수를 마친단 말인가.

 

하지만, 누추한 삶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일은 얼마나 대견하고 고즈넉한 일인가. 내 마음에 안체해놓은 충경 위에 나를 덧대어, 새로운 풍경으로 감싸 읽는 것은 얼마나 위무적인 일인가. 풍경은 자신의 영역 안으로 들어오는 자에게 부단한 치유의 능력을 보여준다.

 

 

오래도록 마음속 왜가리의 목덜미와 진흙 묻은 부리를 어루만질라치면, 못자리에 뜬 하늘처럼 나도 우련히 깊어지기도 하는 것이어서, 부끄러운 지난날들의 흙탕물이 고요히 가라앉는다. 마음의 앙금 안쪽에 실뿌리가 뻗는다. 부유하는 삶은 흐리다.  정처가 없다. 정처가 없으면 뿌리가 내리질 않는다. 뿌리를 기르지 않는 풍경은 힘이 없다. 바닥이 없다.

 

오늘 나는 작은 거울에 입김을 불어 넣고 이 말을 쓴다.

'물끄러미!'

 

아, 저녁 같은 이 말의 촉촉함에 나를 비빈다. 내치는 것도 아니고, 와락 껴안는 것도 아니다. '물끄러미'라는 말속에는 적정한 거리가 있다. 대상이 녹아서 나에게 스며들 때까지의 묽은 기다림이 있다. 째려보는 것도 이니고 쏘아보는 것도 아닌, '넌지시'가 있다. 몰아세우고 닦달하는 것이 아니라, 안쓰러운 대상에 안쓰러운 나를 보리밥에 열무김치처럼 비비는 것. 비빔밥 옆 찬물 한 그릇의 눈을, 가슴을 들이는 것!

 

물끄러미, 오래 젖을 것! 풍경에 나를 덧대고, 내 안에 서려온 그늘이나 설움을 오래 문대며 들여다볼 것!

 

물끄러미, 봄밤의 무논에 별이 뜬다.

 

어둠 속 왜가리는 하늘의 눈동자다. 논두렁이 '물끄러미'라는 알 두 개를 밤 깊도록 품고 있다. '물끄러미'라는 저 작은 우주! 깊다. 세상의 아랫목을 달구려는 두 개의 아궁이가 별빛을 빨아들이고 있다. 무논이며 미루나무 이파리가 찰찰찰 끓어오른다.

 

 

--- 이정록, <시인의 서랍> 가운데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