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친 이야기

타인의 아픔은 나의 책임이다

keepthesunshine 2012. 11. 10. 21:28

얼마 전 신문에서 '죄책감을 잘 느끼는 사람이 좋은 친구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기사를 읽었다.

미국 카네기멜런대학 연구팀은 각종 실험을 통해 죄책감을 잘 느끼는 사람일수록 책임감이 높고, 남을 배려하며, 공감능력이 뛰어나다고 밝혔다.

그들은 '죄책감 척도'를 개발하여 '비윤리적인 사람'을 가릴 수 있는 기준을 개발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왠지 오싹한 느낌을 주는 이 과학적 연구는 사실 매우 철학적인 문제를 제기한다.

죄책감이란 무심코 저지른 나의 행동이 혹시나 타인의 고통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다.

죄책감은 감성을 넘어 지성의 문제다.

'나의 행동이 타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해 냉철한 분석을 할 수 있는 이들이 죄책감도 잘 느낄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죄책감은 일종의 '능력'인 셈이다.

 

그러나 죄책감을 인간 분석의 척도로 삼는다면 잔인한 이성의 횡포가 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죄책감의 뿌리에 '타자에 대한 배려'가 숨쉬고 있다는 것이다.

철학자 자크 데리다라면 이 문제를 '죄책감'이 아닌 '책임'의 문제로 접근했을 것 같다.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심각한 왕따를 당한 인종과 종교를 둘러싸고 일어나는 증오범죄에 숨은 윤리적 딜레마를 직시했다.

그 딜레마는 바로 '다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편협함이다.

나와 다른 존재라도, 그 존엄을 기꺼이 인정하는 마음이 바로 책임이다.

증오범죄는 예컨대 '알카에다에 대한 혐오'의 외피를 두르지만, 실은 '나와 다른 존재에 대한 병적인 거부 반응'이다.

9 · 11 이후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을 본격화했지만,

테러가 일어날까봐 모든 사람들을 병적으로 의심하는 사회로 전락해버렸다.

 

타자에 대한 두려움의 문화는 심각한 증오범죄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12살 데리다를 괴롭힌 것은 대단한 어른들이 아니라 평범한 아이들이었다.

아이들은 어린 그에게 "더러운 유대인!"이라 외치며 돌을 던졌다.

증오의 문제는 단지 제도나 정치를 넘어 일상의 문제였다.

아이들에게 '더러운 유대인'이란 관념을 심어준 것은 바로 부모들이다.

증오는 이렇듯 어린 시절부터 학습되는 일상적 습관이고,

습관화된 증오는 가슴 깊이 박혀 어떤 논리적 성찰도 허용하지 않게 된다.

어린 데리다에게 돌을 던진 아이들의 '무심하고도 순진한 폭력'과

9 · 11테러 이후 미국 사회가 겪어온 극도의 '외국인혐오증'은 결국 같은 뿌리의 폭력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폭력을 중단시키는 힘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그것이 바로 타자에 대한 책임이다.

그냥 뭉뚱그려 '이 사회가 책임이 있다'는 식으로 약자에 대한 죄책감을 희석시키는 것이 아니라,

모든 책임은 오직 '1인칭의 책임', 곧 '나의 책임'일 때만 의미가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타자에 대한 1인칭의 책임을 실천하기 위해 때로는 내가 가진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하고,

때로는 불가능한 것조차 가능하게 만드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러나 책임은 누구에게도 위임할 수 없는 신성한 권리이기도 하다.

세상을 좀더 살 만하게 만드는 힘,

아이들이 자랄 세상을 좀더 따뜻하게 만드는 힘이 바로 이 '타인을 향한 책임'이다.

이것이 우리가 아이들에게 " 이 세상이 얼마나 험한지 아니?"라고 겁주기에 앞서,

"우리는 이 세상을 좀더 아름답게 만들 권리가 있다"고 가르쳐야 하는 이유다.

수상한 사람을 신고하라고 가르치기에 앞서,

아파하는 타인의 신음소리에 귀 기울이는 법부터 가르쳐야 하는 이유다.

우리는 만인의 만인을 향한 투쟁을 가르치기에 앞서,

만인의 만인을 향한 책임을,

만인의 만인을 향한 존엄을 가르쳐야 하는 것이 아닐까.

 

- 정여울, 문학평론가 /  한겨레신문 2012. 11. 10.(토) 22면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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