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8년 ‘보화각’이란 이름으로 국내 최초로 세워진 사립박물관 간송미술관(서울 성북동)에서 올해 70돌을 맞아 조선시대 각 시기의 수준 높은 서화들을 한꺼번에 보여주는 ‘조선서화대전’이 10월 12일부터 26일까지 2주간 열린다.
일제시대 문화재를 수집하고 보존에 재산과 정성을 바친 간송 전형필(1906~1962)이 타계한 4년 뒤 보화각에서는 수집한 문화재들을 조사, 정리, 연구하기 위해 1966년 한국민족미술연구소를 설립하였다. 초대 실장으로 최순우가 소개한 최완수가 부임했고 그 후 지금에 이르기까지 40여 년 동안 꾸준한 조사와 연구를 거친 기획전을 통해 조선회화사의 맥을 잡는 일을 해왔고, 한국 미술사학의 이른바 간송학파를 출현시켜 조선 중후기 문예사를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성과를 이루어냈다.
간송 수집품의 규모는 1971년 가을 진경산수를 완성한 ‘정선’을 시작으로 하여 매년 봄(5월), 가을(10월) 전시회를 거르지 않고 이어와서 올해로 75회 전시회까지 거치는 동안 공개한 기획전을 통해 소장품의 윤곽이 어느 정도 드러났지만 전체 규모는 어디에서도 정확한 숫자가 밝혀지지 않았다고 한다.
또한 기획전 때마다 빠짐없이 논문이 게재된 전시도록 <간송문화>를 펴냈으며 2000년 제59회 도록부터 도판이 흑백에서 원색으로 바뀌었고 게재 도판의 점수도 늘려서 상세한 도판 해설까지 덧붙여 놓았다.
해마다 봄가을로 딱 2주간만 열리는 기획전이라 늘 전시회 기간 동안은 인파들로 붐비게 되는데 1998년 가을 제53회 간송 미술관 소장 지정문화재들을 전시할 때에는 10만의 관람객이 다녀갔다고 한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한 텔레비전 채널에서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 <바람의 화원>의 영향으로 많은 관람객들이 신윤복의 그림 앞에서 더욱 발길을 멈추고 머무는 모습을 보았다.
전시 공간은 넓다고 볼 수는 없지만 건물의 고색창연함과 꽃들이 가꿔진 정원이 전시 작품들을 제대로 품어 안고 있다는 인상을 갖게 했다.
1층 전시실에서 본 신사임당의 ‘오이와 개미취’는 호암미술관에 있는 심사정의 ‘초충도’와는 조금 다르게 부드럽고 산뜻하게 보인다. 황집중의 ‘포도’는 종이가 아닌 천에 수묵으로 그려져 있는데 색감이나 표현이 아주 섬세해서 놀랐다.
이경윤의 ‘소타고 피리 불고’ 에 그려진 소가 우리의 황소가 아니어서 왜 그런가 했더니 도판 해설에 따르면 실물을 보고 그린 것이 아니라 화보를 따라 그린 시대적 소산물이라고 하며 거기에 그려진 소는 흰 물소라고 한다. 이번 전시회에서 보이는 소는 모두 물소의 모습이었다.
조속의 ‘묵은 매화나무에 앉은 상서로운 까치’는 어찌나 생동감이 느껴지던지 아주 조금 고개를 비튼 까치의 몸짓과 시선이 그대로 다가들고 인기척이라도 내면 금방이라도 날아갈 듯 했다. 홍진구의 ‘고슴도치가 오이를 지다’는 함께 전시되고 있는 겸재 정선과 같은 제목의 구성도 비슷한 그림인데 비교하면서 보면 더욱 재미있다.
겸재 정선의 ‘여산초당’과 ‘청풍계’는 대담한 표현이 힘있게 느껴졌고, 김석대의 ‘물새가 날아오르다’앞에서는 그림 오른쪽으로 날아가고 있는 새들을 그림의 주인공처럼 몸을 비틀어 보는 시늉을 해보며 잠시 물가에 앉은 듯이 정경을 그려보았다.
김홍도의 스승인 강세황의 ‘긴 노래 노 한 자루’는 내가 좋아하는, 여백을 많이 둔 화면구성으로 간결한 멋을 주는 그림이다. 호암미술관에서 지금 전시되고 있는 또 다른 그의 그림도 제목은 잊었지만 역시 좋아한다.
단원 김홍도의 ‘말 위에서 꾀꼬리 소리 듣다’는 말을 타고 길을 가던 나그네가 꾀꼬리 쪽으로 고개와 몸을 돌려 그야말로 온몸으로 새소리를 귀 기울여 듣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서 그 흥취에 보는 이도 젖어들게 하는데 단원이 젊은 시절 그린 똑같은 제목의 그림에서는 나무의 이파리 수도 많고 그림이 조금 다르다고 한다. 이 그림은 그가 나이가 들어서 그린 것이라고 한다.
2층 전시실에 있는 혜원 신윤복의 ‘맑은 강에서 뱃놀이하다’는 이정명이 쓴 소설 <바람의 화원>에서 정조의 명을 받고 김홍도와 함께 대결하며 그리는 그림의 하나로 나온다. 그림 속의 인물들 각각의 모습과 표정이 달라서 자세히 들여다보는 재미가 있다.
혜원의 ‘미인도’는 어느 일간지 기자의 표현처럼 참으로 아련하기만 하다. 눈매와 얼핏 미소를 머금은 듯한 입술, 저고리와 푸른 치마의 곡선, 버선코의 날렵함까지도.
정명공주의 반듯한 필체, 강세황의 유려한 필체, 정조의 힘이 넘치는 필체, 정약용의 필체, 김정희의 행서와 예서 등은 내가 처음 보는 것으로 글자를 공들여 썼던 옛사람들의 마음과 그 자세를 잠시 생각해보게 했다.
이번 제75회 조선 서화대전에는 모두 108점이 전시되었고, 기획전 횟수와 같은 지령의 전시도록인 <간송문화> 제75호는 2만원이다.
(매년 5월, 10월 둘째 주 일요일부터 2주간, 오전 10시 ~ 오후 5시, 관람료는 무료)
'쏘다닌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제주도 여행(10.30.~11. 1.) (0) | 2009.12.14 |
|---|---|
| 가을 정원 한 바퀴 (0) | 2009.12.08 |
| <피리 부는 공주>들과 다녀온 부엉이 박물관 (0) | 2008.09.29 |
| 2008년 지역신문 컨퍼런스에 다녀오다 (0) | 2008.09.23 |
| KIAF 2008 (0) | 2008.09.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