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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향에 감사해
--- 문정희
내 고향에 감사해
저 많은 나무들을 보내
초록을 가르쳐 주었고
저 많은 새들을 보내
노래를 알게 했으니까
저 많은 비를 보내
생명을 키우는 눈물을 알게 했으니까
내 고향에 감사해
저 많은 강물을 보내
흐르는 시간을 보여 주었고
저 많은 나비들을 보내
떠나간 이들을 그리워하게 했으니까
저 많은 길들을 보내
내가 시를 쓰게 했으니까
일주문을 지나 부도밭에 시선 언뜻 주며 돌아오는 길 보리라 부지런히 찾아간 곳은 선운사 천왕문 지나 도솔천을 따라 오른쪽길을 택해 운동화젖는 줄 모르고 생각에 잠겨 걷다가 떠오른 시 귀절...
저 많은 강물을 보내 흐르는 시간을 보여 주었고 저 많은 길들을 보내 내가 시를 쓰게 했으니까
강물을 따라 흘러간 시간들, 어디에선가 저 빈 곳마다 어김없이 피어난 꽃무릇처럼 꽃이 되었기를.... 내가 찾아 헤맨 많은 길들, 그리워했던 길들을 빗물 더해져 커진 물소리 들으며 더듬어 보았다. 지난해 3월, 동백꽃 만나러 찾아왔던 선운사엔 동백은 저만치에서 보일 듯 말듯 봉오리 두어 송이 맺혀있었을 뿐, 이른 봄 햇살 가득한 뜰엔 산수유만 노오랗게 피어있었다. 가장 아름답다는 부도밭은 그 아름다운 찬사를 바칠 만한 심미안도 없이 부도탑 사이를 걸으며 찬찬히 볼 수 있어서 좋다는 생각을 하며 걷던 기억이 난다. 그때 도솔천엔 물이 별로 없었다. 9월이 오면 저리도 진붉은 꽃무릇이 응달마다 환히 불 밝히듯 피어날 줄은 정녕 그땐 듣지도 알지도 못한 채 돌 틈 사이 피어난 제비꽃 한 송이 눈 맞추고 일어나 걷던 오솔길, 봄이 깊어지고 초여름이 되면 초록으로 장관이겠구나 생각을 했었다. 그 길을 오늘 되짚어 걸으며 다시금 늦가을이 되면 흩날리는 낙엽들로 하여 꽃피는 듯한 풍경을 만들겠구나, 그래서 선운사는 역시 꽃절이구나 싶었다. 지난해 3월 그 하루도 오가는 사람이 없어 호젓하고 아늑했는데 비 내리는 오늘의 오솔길 또한 사람을 다섯도 마주치지 않을 만큼 호젓해서 나만의 길로 온전히 즐길 수 있었다. 야생화 공원을 돌아보지 못하고 지나쳐서 도솔암 가는 길로 내처 올라갔으나 중간쯤에서 발길을 되돌려야 했다. 지난번에도 버스 시간 때문에 가볼 엄두도 내지 못하고 돌아왔었는데... 1시간30분이라는 제한시간 안에 도솔암에 올라 천마봉을 굽어볼 수 없었기에 그냥 도솔암까지 올라가고 여행편지 팀에게 나는 두고 가라는 가출(?) 아닌 가출을 생각해보았지만 버스에 두고온 가방 때문에 다음에 다음에 다시 찾아오라는 소망으로 다독이며 아까 온 길 반대편(큰 찻길)으로 돌아오며 아쉬움을 달랬다. 지난해엔 얼굴 맑은 스님 몇 분이 지나며 담소하던 모습을 보았던 길... 소박해서 많은 여행가들이 보기 좋다 꼽는 만세루도, 인자하다는 지장보살님 미소도, 부도밭도 다시금 찬찬한 눈길로 살피지 못한 채 질끈 마음을 동이고 돌아온 선운사 도솔천 오솔길, 오늘의 아쉬움을 풀기 위해 다시 찾아오는 날, 묵은 회포를 나누자꾸나... 바지도 젖고 신발도 젖어 양말도 발도 젖었지만 비에 젖은 도솔천 오솔길, 처연히 긴 대궁 끝에 꽃을 달고 무리지어 서있던 꽃무릇, 아름다웠다... 빗물 속에 얼굴을 박은 채 휘어져 있던 꽃무릇 한 송이까지도... (2007. 9.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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