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친 이야기

낯선 존재를 향한 '빨강머리 앤'의 사랑법

keepthesunshine 2011. 2. 20. 21:36

 

여행을 하다 보면 여행지의 인심을 측정하는 바로미터가 바로 '처음 보는 이방인을 받아들이는 원주민들의 태도'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이방인에게 유독 폐쇄적인 태도를 보인다든지, 뭔지 꺼림칙한 뉘앙스를 던지는 곳에서는 편한 마음으로 여행의 즐거움을 만끽하기 어렵다. 여유로운 마음을 가진 원주민들의 특징은,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거침없이 보디랭귀지로 열린 마음을 표현한다는 것이다. 건강한 문명은 섞이는 것, 잡스러워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이질적인 타자'를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따라서 그 지역 문명의 '건강도'를 체크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관광수입을 올려주는 외국인 방문자에게는 더없이 친절하면서, '밥그릇'을 함께 나누어야 하는 이주노동자에게는 더없이 불친절한 한국인의 인심은 과연 몇 점이나 될까.

 

고아 소녀 앤 셜리의 성장소설로만 알고 있던 <빨강머리 앤>이 최근에는 '이방인을 받아들이는 원주민의 태도'라는 차원에서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다. 앤의 입장이 아니라 마릴라와 매튜의 입장에서 <빨강머리 앤>을 읽으면 이 아름다운 이야기의 또 다른 진경이 펼쳐진다. 마릴라와 매튜는 낯선 자극에 한없이 폐쇄적인 존재들이었다. 마릴라의 이웃 린드 부인도 마찬가지다. 린드 부인은 앤을 잘 알지 못하면서 앤이 고아라는 사실과 앤의 초라한 겉모습만 보고 온갖 악성 편견의 보따리를 늘어놓는다. '일 잘 하는 사내아이'를 농장 일꾼으로 데려오려 했던 마릴라와 매튜는 '잘못 배달된 고아 소녀'앞에서 망연자실하지만, 첫눈에 초록색 지붕집에 반해버린 앤의 그렁그렁한 잿빛 눈동자를 외면하지 못한다. 그들은 받아들이기 싫은 낯설고 불편한 존재 앤을 통해, 낯선 존재를 두려움 없이 사란하는 법을 배운 것이 아닐까.

 

마릴라와 매튜는 앤으로부터 '낯선 대상'에서 최고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힘을 배운다. 앤은 사물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해석하고 '자신만의 이름'을 붙이며 논다. 익숙한 풍경이었던 초록색 지붕집 주변의 자연은 앤으로 인해 저마다 빛나는 이름을 얻고 세상에 하나뿐인 장소가 된다. 초록색 지붕집을 가꾼 것은 마릴라지만 그 집에 아우라를 부여한 것은 고아 소녀 앤이었던 것이다. 마릴라와 매튜는 변화의 두려움 없는 대신 한없이 권태로웠던 자신들의 삶이 얼마나 황폐했는지를 깨닫는다. 아무도 사랑하지 않으리라 결심한 사람들처럼 굳게 다문 입술에서 오랫동안 참았던 미소가 번지기 시작한다.

 

소풍도 처음, 아이스크림도 처음, 돌아올 집이 있다는 기쁨도 처음, 이 모든 게 처음이라며 그때마다 감사의 키스를 해대는 앤의 애정공세에 마릴라는 정신을 잃고 사랑에 빠진다. 앤을 침착한 아이로 바꾸려는 훈육은 전혀 먹히지 않는다. 마릴라는 비로소 깨닫는다. 앤을 얌전한 모범생으로 훈련시키는 것은 한줄기 얕은 시냇물 위에서 춤추는 햇빛을 훈련시키는 것과 마찬가지임을. 아무리 엄격한 벌을 내려도 어느새 그 '굴욕의 시간'마저 '놀이의 시간'으로 바꾸어버리는 앤. 그런 앤에게 가족이 되어줄 수 있다는 것, 그런 앤에게 언제나 그리운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릴라에겐 더할 나위 없는 축복이다. "집이 있고 집으로 돌아간다는 게 너무 좋아요. 전에는 어떤 곳도 사랑한 적이 없어요. 그 어디도 결코 집 같지가 않았거든요. 아, 마릴라 아주머니. 전 너무 행복해요."

 

마릴라는 조금이라도 밝은 장소에서는 결코 앤을 바라보지 못한다. 마릴라는 다정한 언어와 제스처로 사랑을 표현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마릴라는 사실 앤을 너무 깊이 사랑하게 될까봐 두려워하고 있었다. 마릴라는 자기가 앤을 좋아하는 것처럼 '인간을 지나치게 사랑하는 것'은 죄악이라고 믿었다. 앤이 어느새 마릴라보다 키가 훌쩍 컸다는 사실을 알아챈 날, 마릴라는 저녁 어스름 속에서 이상한 슬픔을 느끼며 홀로 흐느낀다. 나의 사랑과 보살핌이 필요한 존재, '나의 아이', '내 소속의 책임'이었던 앤은 사라져버리고 어느덧 '타인에게 필요한 존재', '이 세상 밖으로 내보내야 할 존재'가 된 것이다.

 

죽은 예수를 무릎에 눕히고 처연하게 바라보는 마리아를 그린 <피에타>가 감동적인 것은 오직 '내 아들'이기만 했던 예수를 이 세상의 아들로, 이 세상 모든 '남들'의 아들로 내어주는 순간의 고통스런 기적을, 더는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마리아의 용기가 그려져 있기 때문이 아닐까. 내 것이 아닌 것을 내 것으로 받아들이는 용기만큼이나, 한때 내 것이라 믿었던 것을 '남들의 것'으로 내놓는 용기야말로, 이 아름다운 '입양의 시대'에 필요한 윤리가 아닐까. 주근깨 빼빼 마른 빨강머리 앤이, 어딜 가든 천덕꾸러기였고 군식구 취급을 받으며 유리창에 비친 자신의 이미지가 유일한 친구였던 앤이, 한 남매의 딸을 넘어 우리 모두의 영원한 딸내미가 되었듯이.

 

(정여울 / 문학평론가 .... 2011년 2월 19일 한겨레신문, 정여울의 청소년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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