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인들이 사랑한 최고의 문학여행
<낯선 땅에 홀리다> ... 마음의숲 / 2011
제주, 익숙하지만 낯선
--- 박성원
"이 세상에서 가장 불결한 여행이 무엇인지 알아?"
비행기 안에서 그녀가 물었다. 불길한 여행도 아니고 불결한 여행이라니.
내 머릿속에는 많은 단어들이 기류를 만나 흔들리는 작은 비행기처럼 흔들리며 떠돌았다.
후진국. 내전. 전염병. 풍토병.
"글쎄."
"그건 말이야, 마음속에 욕망이나 목표가 있는 여행이야."
그러니까 그녀의 뜻은 이러했다.
어떠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여행을 한다면 목적을 이룰 순 있어도 그보다 더 큰 것들을 잃을 수 있다는 것이다.
목적지에 더 빨리 도착하기 위해서 수없이 많은 갈림길을 놓친다는 점.
목표만 쫓다 보면 목표 외에는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점.
그렇기에 그녀는 성지순례 같은 여행을 가장 혐오한다고 말했다.
"이스라엘에 가서 기독 문화에 대한 성지순례를 한다고 해. 과연 그들의 눈에 바로 곁에 있는 이슬람 문화가 들어올까?"
맞는 말이다. 하지만 나는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여주지 않았다.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부터 많은 여행을 다녔다.
많은 것을 성취한 그녀로서는 자신감이 있기 때문에 목적 없는 여행에 대해 쉽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처럼 그 어떠한 목적의식도 없이 살아온 사람에게 있어선 목표가 뚜렷한 사람은 늘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정답을 알고 싶어 마냥 떠도는 삶. 나는 그런 삶을 꿈꾸며 고등학생 시절을 보냈다.
그리고 졸업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간단한 짐을 들고 떠나기 시작한 것이다.
여비가 필요하면 갖은 일을 다 했다.
수박 과수원에서 하루 종일 외발 수레로 수박을 나르기도 했고, 양계장에선 마스크도 착용하지 않고 며칠씩 닭똥을 치우기도 했다.
태백에 갔을 때는 탄광촌에 들어가고 싶었지만 체력 심사에서 떨어져 탄광촌 부근만 배회하다 돌아오기도 했다.
가장 오래 했던 일은 안경테를 만드는 공장에서 프레스로 금도금 입힌 안경테를 자르는 일이었다.
야근까지 신청하여 아침부터 밤까지 마치 무한하게 반복될 것만 같은 단순노동을 반복하고 나면
몸이 무거워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벼워졌다.
자취방에 누우면 딱딱한 바닥은 금세 구름이 되었고, 내 몸안에는 수소 가스가 가득하여 붕붕 떠다니는 것만 같았다.
안경 공장에 다니면서 내 또래의 젊은 친구를 사귀었는데, 공장에 다니는 동안 그 친구의 자취방에서 함께 머물렀다.
그 친구는 일종의 전문 산악인이었다. 그 친구는 돈을 모아 에베레스트에 오르고 싶어 했다.
그때까지 에베레스트에도 입장료가 있는지조차 모르고 있던 나로서는 그가 말하는 산 이야기가 무척 재미있었다.
그는 방 안의 벽에다 산 사진과 등산 장비 사진을 잔뜩 붙여 놓았는데,
산에 대해 전혀 무지한 내가 보아도 반할 만한 멋진 사진들이었다.
그 친구의 방에서 잘 때면 히말라야에 오르는 꿈을 자주 꾸었는데,
정상을 바라보며 오르고 있으면 산을 오르는 것이 아니라 마치 하늘을 오르고 있는 것 같았다.
펄럭이는 바람 소리와 눈썹 위에 달라붙어 있는 고드름, 거친 호흡을 할 때마다 뱉어지는 숨결,
그리고 막연한 공포감이 뒤범벅되어 꿈속에 달라붙어 있었다.
"8,000미터가 넘으면 고체로 된 음식을 먹을 수 없어.
추위와 산소 부족으로 하루에 4리터 가까운 물을 마셔야만 해.
물론 꿀이나 비타민을 듬뿍 넣어서 말이야."
그 친군 잠들기 전에 항상 에베레스트 등반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 친구의 말을 듣고 있으면 좁은 자취방은 이내 고산지대에 친 텐트로 변했고,
거리에서 거칠게 다니는 트럭의 소리가 빙벽을 가르고 달려오는 바람 소리 같았다.
내가 그를 부러워한 것은 다른 게 아니라 그가 가지고 있는 목적 때문이엇다.
그에겐 뚜렷한 목포가 있었다.
그러나 나에겐 그 어떠한 목표나 목적도 없었고, 하다못해 무엇을 해야 할지 갈피조차 잡을 수 없었다.
모든 게 정답이자 오답인 것 같았고, 문제에 가까이 가면 갈수록 답은 더욱 더 멀어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 세월은 줄곧 이어졌다.
운 좋게 소설가가 되었지만 글쓰기는 지지부진했고, 내 삶은 술에 절어 더욱 나태해지고 있었다.
그런 삶을 벗어나기 위해 돈을 모으고 여행 준비를 했다.
유럽 배낭여행에서부터 전국 일주까지.
그러나 갈증에서 벗어나기 위해 바닷물을 마신 사람처럼 여행에서 다녀온 다음 날이면 나는 더더욱 심한 갈증에 시달렸다.
희망은 무뚝뚝한 표정을 지은 채 나를 외면했고 나는 절망과 술 그리고 술과 절망의 나날을 반복했다.
"그거 알아? 희망은 원래 무뚝뚝하다는걸?"
그녀가 그렇게 말했고 비행기는 제주 공항에 곧 착륙했다.
그녀와 나는 안전벨트를 두른 뒤 의자를 일으켰다.
희망이 왜 무뚝뚝한 것인지 묻고 싶었지만 귀가 멍해 나는 마른침만 삼켰다.
나는 국내 여행지 중에 제주도를 가장 많이 찾아갔다.
제주도를 처음으로 가 봐야겠다고 마음먹었을 때는 동거를 하던 함민복 시인이 강화도로 가서 독립해 살 때였다.
강화도 여행길에 우연히 들린 나는 그와 함께 해가 지는 서해를 바라보며 술을 마셨다.
그와 나는 예전부터 바다를 좋아했다.
둘다 태어난 곳이 내륙 지방이어서 바다라는 거대함을 동경한 탓도 있었다.
방향을 몰라 길 위를 떠돈 삶이 내 삶이라면 그는 길 위에서 산 삶이었다.
경운기 소리에 아카시아 꽃향기가 지워지는 길에서 그는 어린 시절을 보냈으며,
등록금을 내지 못해 중학교 시절을 개울이나 강가에서 물고기를 잡으며 보냈다.
고등학교 때부터 정든 고향을 떠나 수많은 다른 길을 보기도 했다.
길에서 생각들을 줍기도 했고 많은 상처들을 길에 흘러 보내기도 했다.
1987년 민주화운동 때에도 그는 길에 서 있었다.
길 위에서 시를 쓰기도 했고 술에 대취한 날에는 길에서 깜빡 잠들기도 했다.
집이 없어 한때는 많은 길을 통해 옮겨 다니기도 했다.
그런 그가 강화도에 정착했다니.
나는 "형은 더 이상 길을 보지 않아도 되겠네요."하고 물었다.
"나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지. 평생 길 위에서 보냈으니 이제 더 이상 길이 없는 바다로 왔구나, 하고 말이야.
그러나 여기엔 또 다른 길이 있다. 바로 뱃길이다.
뱃길은 아무리 다녀도 다져지지 않는다."
그는 바닷길이야말로 진정한 길이라고 말했다. 굳은살 하나 없는 말랑말랑한 생살로 된 길이라고 했다.
먼지가 나지 않는 길. 물고기를 잡으려 물고기를 쫓아다니는 길이니 물고기가 만들어 준 길이기도 하다고도 했다.
사람이 만든 이때까지의 길과는 다르다는 것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이해는 되었지만 가슴에 와 닿지는 않았다.
함민복 시인과 헤어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잠시 부산에 머물렀다.
광안리나 해운대에 가서 잠시 바다만 보자고 했던 것이 그만 제주도로 가는 배에까지 승선하게 된 것이었다.
제주도로 가는 내내 나를 사로잡은 것은 거대한 바다가 아니었다.
배가 만드는 길이었다. 그러나 그 길은 배가 지나가면 금세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나는 생겼다가 사라지는 길을 얼마나 바라보았는지 모른다.
인위적인 것들. 인간들을 위한 것들은 모두 흔적을 남긴다.
그리고 그 흔적들은 인간들에겐 이로울지 모르나 자연은 그만큼 빼앗기게 되는 것이고 아픈 것이 된다.
그러나 바다 위의 길은 기계와 거대한 모터와 스크류가 짓이기며 지나가도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그 정도는 광대한 바다의 세상에서 먼지도 되지 않는다는 듯이 금세 아물었다.
제주도 여행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무엇이 나를 자꾸만 제주도로 이끈 것일까?
공항을 빠져나오면 낮은 야자수들이 흔들거리는 이국적인 모양새 때문일 수도 있을 것이다.
남태평양의 모아이나 영국의 스톤헨지처럼 전설과 신비를 가진 돌하르방 때문이거나
주상절리, 짙푸른 바다, 외국어 같은 언어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낮은 풍경이 좋았다.
언젠가 자전거를 타고 제주 일대를 돌아 다니면서 내가 느낀 것은 익숙하지만 낯선 풍경들이었다.
그러나 무엇이 낯선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다가 깨달은 것은 낮은 풍경들이었다.
한라산이나 몇몇 오름을 제외하면 제주도는 한국에서 유일하게 광활한 평지를 이루고 있다.
건물과 네온사인에 갇힌 도시에서는 도저히 볼 수 없는 수평적 깊이가 가득하다.
흔하게 산을 볼 수 있는 내륙과는 달리 제주도의 지상은 바다를 닮아 있다.
내가 제주를 가장 사랑하는 이유는 바로 그것이었다.
도시가 가진 높이,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벽을 제주도에선 잘 찾을 수 없다.
나를 힘들게 하고 지치게 만드는 것 역시 높이와 벽이다.
지칠 때면 나는 제주에서 며칠 혹은 몇 달을 보내고 도시로 돌아왔다.
무작정. 아무런 계획도 없이. 그렇게.
그녀와 제주도 여행을 가게 된 것도 계획엔 없던 일이었다.
그녀의 제주도 여행은 조금 남다른 것이 있었다.
그녀는 제주도의 유명 관광지들을 탐탁지 않게 생각했다.
금릉해수욕장만 하더라도 2000년대 초반까지 그곳 주민들만 아는 최고의 바닷가 중의 하나였다.
물론 나 또한 가장 아끼는 바다였다.
그러나 인터넷을 타고 슬렁슬렁 알려지더니 제대로 된 이정표도 없이 금세 유명해져,
초짜 여행객들을 위한 여행 안내서에까지 필수 코스로 등장했다.
그녀는 그런 사정을 잘 아는지 시내버스와 시외버스로만 여행을 다니자고 했다.
공항에서 100번 버스를 타고 시외버스 터미널까지 갔다.
거기서 다시 무작정 버스를 탔다.
버스를 타기 전에 버스에 붙어 있는 지명과 행선지를 봤지만 제주를 십여 회 이상 여행한 나로서도 생소한 지명들이었다.
1136번 도로를 따라 고성리, 상가리까지 가는 버스였다.
고성리만 하더라도 경북과 강원도 등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지명일 것이다.
그러나 경북의 고성과 강원도에 있는 고성이 서로 다르듯이 제주에 있는 고성리도 다르다.
익숙하지만 낯선 것들이다.
창문을 통해 다가오는 익숙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낯선 풍경들.
어릴 때나 혹은 꿈에서 본 듯한 풍경들.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 이름 모를 나무들.
그녀와 나는 아무 곳에서 내렸다.
잡화를 파는 가게가 정류장을 겸하고 있는 곳이었다.
어디선가 개 한 마리가 불쑥 고개를 내밀고는 사라졌다.
우리는 길을 따라 걸었다.
낮은 담을 통해 집 안이 보였다.
해녀였을 법한 할머니 한 분이 마루에서 채소를 다듬고 있었다.
키가 제법 큰 할아버지는 마당에서 한치를 말리고 있었다.
긴 빨랫줄에 일렬로 한치들이 널려 있고 할아버지의 입에선 담배 연기가 피어 올랐다.
우리들이 한동안 바라보자 할아버지가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어디로 갈까?"
이정표 아래에서 내가 묻자 그녀는 밥부터 먹자고 했다.
우리는 지도를 보고 바닷가 방향으로 발길을 돌렸다.
걸어가면 걸어갈수록 바다 냄새가 났다.
옹포리까지 아마 두어 시간은 걸었을 것이다.
"어때? 유명 관광지가 아니어서 심심해?"
그녀가 물었다. 나는 장난으로 그렇다고 했다.
하지만 그녀는 여기야말로 매우 특별한 곳이라고 했다.
내가 왜 그런지 묻자 그녀는 말했다.
"이런 곳이야말로 제주 바다의 낱말들이 곳곳에 묻어 있잖아. 호텔이나 유명 관광지는 도시와 다를 바가 없잖아."
그렇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말처럼 길가에 핀 꽃이나 담벼락 하나에도 제주 바다만의 낱말들이 묻어 있었다.
두어 시간 걸어 우리가 찾은 식당은 관광객들을 상대로 영업하는 게 아니라 주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허름한 식당이었다.
우리는 제주도 흑돼지 구이를 시켰는데 쌈장이 아닌 멸치젓에 찍어 먹는 것이었다.
멸치젓에선 여느 젓갈처럼 짭짤하면서도 개운한 맛이 풍겼다.
걸어가면 바닷가까지 20여 분이면 충분할 것 같아서 숙소를 잡기로 했다.
그러나 관광지가 아니어서 인근에 숙소는 없었다.
우리 사정을 알았는지 식당 아주머니가 자기네 집에 빈 방이 하나 있다고 했다.
돼지구이 2인분 값보다 싸게 방을 얻었다.
작은 창문을 열면 멀리 바다가 보이기까지 했다.
멀리 보이는 밤바다는 도서관처럼 조용했다.
식사를 마친 뒤 우리는 바닷가까지 산책을 했다.
모래사장은 없었지만 작은 배가 몇 척 정박해 있었다.
배의 주인은 저 배로 자식들을 성장시켰을 것이다.
배는 주인과 함께 몇 번이나 풍랑을 만났을 테고, 몇 번이나 아팠을 테고 또 몇 번이나 만선의 기쁨을 누렸을 것이다.
지금 무뚝뚝한 표정으로 쉬고 있는 저 배는 누군가에게는 절대적인 희망일 것이다.
산책을 마치고 방으로 들어오니 주인아주머니가 라디오를 가져다주었다.
"안테나가 없어 이 방엔 텔레비전이 나오지 않네. 도시 사람들 하루 자는데 심심해서 어째?"
그러나 주인아주머니의 걱정과 달리 약간의 잡음이 섞인 라디오는 전혀 심심하지 않았다.
잊고 있었던 음악을 들으며 우리는 맥주와 옥돔구이를 먹었다.
머릿속에선 최성원의 '제주도 푸른 밤'이 떠나질 않았다.
"밖에 나가 봐."
화장실에 다녀온 그녀가 내 손을 잡아당겼다.
그녀가 데려간 곳에서 하늘을 올려 보자 별이, 정말 많고 밝은 별이 쏟아질 듯 박혀 있었다.
"저거, 컴퓨터 그래픽 아니지?"
도시의 불빛이나 화려한 기술에만 익숙한 내 입에선 그런 말이 불쑥 튀어나왔다.
"난 베스트셀러보다 꼭꼭 숨어 있는 좋은 책을 발견할 때, 난 그게 좋더라."
어둠 속에서 그녀가 웃는 게 희미하게 보였다.
(2008년 1월 3일부터 7일까지, 버스 타고, 걸었던 제주도 여행...혼자서,참 행복해서 입을 귀에 걸고 다녔더랬는데...
너무나 간절히 떠나고 싶구나, 이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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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스의 보물
--- 성석제
언제 어디서나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맞는 생활방식대로 살아가게 마련이다.
남이 뭐라든 간에 행복은 스스로가 결정하는 것이다.
라오스에는 행복한 사람들이 산다.
행복, 그것도 라오스의 보물이다.
If you buy, Nature pays.
(당신이 뭔가를 사면, 자연이 이를 지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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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4시 반에 비가 내리는 도시, 프놈펜
--- 신이현
프랑스 여행객이 우리에게 프놈펜이 처음이냐고 묻는다.
그렇다고 했더니 수영장 원두막 벽시계를 가리키며 이렇게 말한다.
"여긴 오후 4시 반만 되면 비가 와요. 아주 사납게 온다니까요.
벌써 일주일짼데, 정말 신기하죠?"
다음 날 함께 아침을 먹기 위해 창을 만난다. 누군가와 아침을 먹기 위해 약속해서 만나기는 난생처음이다.
저녁 약속이 아닌 아침 약속을 하고 걸어가는 내 인생이 무척 건전하게 여겨진다.
나는 사람들이 많은 곳으로 가 보자고 제의한다.
큰 도로를 지나 좁은 골목길 안으로 들어서니 진짜 복작거린다.
온 동네 사람들이 다 모인 것 같다.
캄보디아 사람에게 아침 약속은 특별한 것이 아니다.
이들은 아침을 나가서 먹는다고 한다.
아침에 샤워만 하고 나오면 거리에 따뜻한 국수와 죽이 가득하다니, 정말 환상적이다.
후루룩 첫맛을 보는 순간 이 아침 국수 없는 나라에 가서 어떻게 사나, 벌써 아쉬워진다.
밤새 숯불에 닭 뼈를 푹 고아서 만든 국물에 얇은 쌀 면이다. 여기에 숙주나물을 넣고 신선한 라임즙을 짜 넣으면 완성이다.
부드러운 면발 속에 생 숙주가 아삭하게 씹히고 콕 쏘는 라임즙이 들어간 국물은 뒷맛이 상큼하다.
탁자 위에는 뜨겁게 끓인 커다란 찻주전자가 놓여 있고 사람들이 알아서 따라 마신다.
주인아저씨는 가히 달인이라 할 만하다. 국수 한 그릇 말아 내는데 10초.
나는 이 모퉁이와 달인 아저씨에 푹 빠져 버린다.
어제까지만 해도 몰랐던 땅이며 몰랐던 사람들이다.
내가 잠든 깊은 밤 해가 뜨는 지구 모퉁이가 있고, 그곳에는 국수를 마는 달인이 있고
맛있게 먹고 부리나케 일터로 가는 사람이 있었다.
세상의 모든 낯선 사람들의 인생이 친근해져 버리는 순간이다.
종교가 가져야 할 기본적인 미덕에만 충실하고 있는 절이다.
그동안 나는 건축학적 미가 절정을 이룬 신의 집, 우아한 예술적 미가 흐르는 신의 모습에서만 신성함을 느끼는데 익숙해져 있었나 보다.
달콤한 사탕수수 주스와 커피를 번갈아 마시며 나는 행복해진다.
맛있는 주스와 카피 한 잔이 그 도시를 사랑하는 조건에 포함될 수 있을까.
프놈펜, 그냥 나 혼자 사랑에 빠진 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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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딸과 무작정 일본 문화 탐방
--- 신현림
추천: 아사쿠사(절), 도쿄도 시립 미술관, 국립박물관, 국립 서양미술관, 우에노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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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 마치 거듭되는 전생의 만남처럼
--- 함성호
지금 지도를 보고 있는 저 사람은 아무것도 모르리라.
그 지도 위의 길에서 어떤 풍경들을 만나게 될지. 축복, 축복을.
풍경은 언제나 자신의 내부에 있다.
우리가 어디에서 무엇을 보든 그것이 자신의 내부에서 울리지 않으면 우리가 본 모든 것은 그저, 건물이고, 나무고, 강일 뿐이다.
소쇄원의 눈 내리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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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여행을 통해 자신을 본다.
세상과 마주 서는 법을 배우는 자신을,
일말의 두려움을 떨쳐버리기 위해 눈을 부릅뜨는 자신을,
그렇게 세상과 마주쳐서 부릅뜬 눈으로 바라본 세상의 풍경을
자기만의 가슴으로 담아내려는 자신을.
(체 게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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